[폰트이야기]서체 디자인 스튜디오, 양장점 -1-

배포일 2017.12.14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 양장점, (좌) 장수영 (우) 양희재 디자이너
(양장점 사이트 http://yang-jang.com, 인스타그램 @yangjang.type)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양장점의 '양'을 담당하시는 양희재 디자이너님과 '장'을 담당하시는 장수영 디자이너님 두 분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양희재(이하 ‘양’): 양장점의 로만체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양희재입니다. 스위스의 로잔예술대학교(ECAL) 아트디렉션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1년 정도 되었습니다.

장수영(이하 ‘장’): 양장점의 한글 서체 디자인을 맡고 있는 장수영입니다. 산돌커뮤니케이션에서 서체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퇴사한 지 2년 좀 넘었습니다. 현재 양희재 디자이너와 양장점이라는 팀으로 1년째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올해 7월, 오랜 작업 끝에 펜바탕 제작발표 및 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치셨는데요. 큰 행사를 마치신 소감은 어떠한지, 그리고 전시 후 근황도 궁금합니다.

장: 양장점 펜바탕 전시회 는 2014년 제5회 한글글꼴창작지원금 수혜자로 선정되어 시작한 펜바탕 작업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전시 후 펜바탕 사용에 대한 문의나 강의, 인터뷰 요청이 부쩍 늘어서 무리하게 큰 돈 들여 전시한 보람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동안 전시준비로 미뤄둔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저와 양희재 디자이너 모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펜바탕 Regular’ 출시를 위해 막바지 수정·보완 작업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평소 친분이 있던 스트라이크 커뮤니케이션즈 김장우 대표님께서 아주 좋은 조건으로 사무실 셰어를 제안해 주셔서, 이태원 경리단길로 작업실 이전도 하였습니다.


지난 7월, 서울 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에서 열린 양장점 펜바탕 전시회 포스터(디자인: 신동혁, 양장점)


양장점 펜바탕 전시회 전경(사진: 김경태)



‘양장점’, 이름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그리고 양장점이 탄생하기까지의 재미난 일화가 있나요?

장: 양희재 디자이너와 저는 원래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동문입니다. 두 학번 차이인데, 제가 4학년 초에 일찌감치 서체 회사로 취업을 했고 중간에 입대, 휴학 등 실제 학교생활이 겹치는 기간이 길지가 않아 그리 친한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스위스에서 유학 중이던 양희재 디자이너가 유학 후 국내에서의 본인 진로에 대한 고민을 저와 공유하면서부터 조금씩 교류를 쌓았고, 귀국 후 펜바탕의 로만체 디자인을 전담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양장점’이라는 팀명은 학교 친구들이 지어준 건데, 워낙 작명에 무관심한 친구들이라(신덕호 디자이너는 그냥 ‘신덕호’, 신동혁/신해옥 디자이너는 ‘신신’ 등 대략 이딴 식) 관심 없다는 듯 ‘그냥 양장점 해’ 라고 툭 던지는 말에 다들 한바탕 크게 웃고는 그때부터 양장점이 돼버렸습니다.



본격적으로 두 분이 발표하신 펜바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이번에 선보인 서체, 펜바탕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장: 펜바탕을 설명해 드리기 전에, 저희가 목표로 하는 자족 구성에 대해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펜 시리즈’는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필기도구인 ‘펜’과 손글씨에서 오는 ‘감성’을 서체로서 정제 및 제도화하는 프로젝트로, 가늘고 날카로운 질감의 샤프를 모티브로 한 ‘펜돋움 Thin’, 필압을 통해 건조한 점성을 갖는 볼펜을 모티브로 한 ‘펜바탕 Regular’, 부드럽게 번지는 네임펜을 모티브로 한 ‘펜바탕 Semibold’, 가로획과 세로획의 두께 대비가 큰 사각촉 매직펜을 모티브로 한 ‘펜돋움 Heavy’, 총 4종(펜바탕 2종/펜돋움 2종)으로 구성될 서체 패밀리입니다. 이 중 ‘펜바탕 Regular’가 얼마 전 전시회를 통해 발표했던 서체로, 현재 제작 완료를 앞둔 상황입니다. 펜바탕은 ‘한글 이탤릭체 제작’과 ‘현재의 필기 문화 반영’이라는 두 가지 전제를 두고 한글을 먼저 진행했으며, 손글씨의 속도감이 더해져 횡적인 기울기를 갖는 영문의 이탤릭처럼, 한글도 세로쓰기 구조에서 볼 수 있는 종적인 기울기를 가로쓰기 방식에 적용했습니다. 둥글고 유연한 ‘붓’, 납작하고 딱딱한 ‘닙’이라는 동서양 필기도구의 차이를 극복하는 대신,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펜’의 도구적 특성과 필기감을 본문 조판환경에 반영했습니다.

양: 펜바탕 로만체 디자인의 경우, 진행 중이던 한글 디자인에서의 형태적 특징과 영문 이탤릭체에서의 구조적 특성의 조화를 목표로 제작했습니다. 필기 양식에 기반을 둔 이탤릭체의 가장 큰 특징인 획의 속도감은 유지하되, 글자를 기울이지 않고 세워서 한글과 영문 획의 운동감에 대한 균형을 맞췄습니다. 필기도구는 통일했지만, 선천적으로 완전히 다른 문자라는 점에서 한글과 영문의 구조적인 균형을 맞추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고, 이는 저희가 후반 작업에서 반복적인 조판테스트를 통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이기도 합니다.


양장점의 펜시리즈 자족 구성(펜돋움 Thin, 펜바탕 Regular, 펜바탕 Semibold, 펜돋움 Heavy)



처음에 ‘펜바탕’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장: 구체화된 상태의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붓글씨 기반의 명조체와는 달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펜의 느낌과 손글씨의 편안함이 느껴지는 본문용 서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때마침 방일영문화재단의 ‘한글글꼴창작지원사업’ 공고가 올라와 지원하게 되었고, 수혜자로 선정돼 후원을 받게 되어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펜바탕입니다.


펜시리즈의 모티브가 된 장수영 디자이너의 펜글씨(사진: 핑거프린트 매거진/오창동)



‘한글글꼴창작지원사업’을 통해 제안한 펜바탕 초안과 지난 전시를 통해 공개된 현재의 펜바탕에서 많은 디테일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어떤 부분들을 어떻게 수정 조율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 초안에서는 수혜자로 선정되기 위해 기존의 본문 서체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형태적으로 힘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손으로 쓴 펜글씨에서 구현되는 형태적 디테일을 다 표현하다보니 심사위원분들 앞에서 발표할 때는 할 얘기가 많아 나름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하면 할수록, 조판테스트를 거치면 거칠수록 본문에서는 이러한 표현들이 너무 과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후반 작업에서는 역으로 초안에서의 캐릭터를 정제해서 구조적인 부분만 남겨 본문 조판에서 부담스럽게 보이지 않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장 디자이너님께서 서체 회사 퇴사 후 진행하신 첫 번째 서체로 알고 있는데요, 펜바탕의 초기 작업과정과는 달리 양장점의 ‘양’과 함께 진행하신 이후의 작업 과정은 어떠했나요?

장: 수혜자로 선정된 게 퇴사하기 1년 전이었기 때문에 펜바탕의 시작은 회사 일과 병행하면서부터였습니다. 한글 작업 자체로만 놓고 보면 이미 한글디자인의 전반적인 설계가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양희재 디자이너가 합류하기 전과 후가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반면에 영문디자인은 당시 초안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기획부터 제작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는 각자의 한글과 영문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고, 서로의 작업에 대한 논리적 맹점들을 보완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국영문 서체의 조화에 대해 저희가 제시하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이 사용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앞으로 둘이서 함께 기획하고 만들 서체들이 무척 기대됩니다.



그렇다면, 장 디자이너님은 지난 3년여간 펜바탕을 작업하시면서 스스로에게 생긴 새로운 과제가 있나요?

장: 작업 효율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제작 과정을 돌이켜보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커머셜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중간중간 흐름이 끊기고 그러다 보니 개인 작업을 진행하는데 소요되는 전체적인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3년의 작업 기간도 따지고 보면 절반은 생계를 위한 커머셜 작업이었습니다. 결국 개인 작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이 개선되어야 하는데, 지금도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기다리고 계실 텐데, 언제쯤 펜바탕을 직접 만나볼 수 있을까요?

양: 현재 수정 보완 작업 및 특수문자 제작 등 후반 공정이 좀 남았는데, 특히 특수문자 스펙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입니다. 폰트 협회에서 특수문자 관련 회의를 2주에 한 번씩 하는데, 사용성에 따라 단계를 나누어 제작하는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펜바탕 전시 때 이용제 선생님이 오셔서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저희도 그 취지에 공감하여 참관하는 방식으로 회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 ‘펜바탕 Regular’ 홍보를 위해 이웃 디자이너들이나, 관심을 가져주신 디자이너 분들 위주로 기본적인 문장부호가 갖춰진 프로토 타입을 우선 제공해 드렸습니다. 추후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펜바탕 Regular’의 특수문자 스펙도 정해지면, 곧 오픈될 양장점 사이트를 통해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 중에는 정식 판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나머지 ‘펜 시리즈’ 3종은 내년 중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순차적으로 진행해 보고자 합니다.



예전 인터뷰(계간그래픽 26호, 한글타입과 레터링)에서 서체가 ‘어떻게’ 사용되길 바란다보다는 사용자들이 ‘왜’ 사용했는지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특별히 의도하신 펜바탕의 사용 ‘이유’가 있을까요?

장: 서체는 어딘가에 사용되어야만 기능할 수 있는 그래픽디자인의 요소 중 하나라는 점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픽 작업에서 서체가 결정되는 과정은 단순히 서체 자체가 갖는 시각적 인상이 전부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복합적인 생태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서체 디자이너는 그들이 만든 활자가 특정한 맥락 혹은 매체와 만나게 되는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 없으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서체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일종의 가상성에 기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서체에만 너무 의존하는 것도, 서체 디자이너가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도 모두 위험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만든 서체의 메타포를 이해하고 적합하게 사용해주는 것도 서체 디자이너로서는 기쁜 일이지만,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맥락에서 사용된 결과물이 훨씬 자극이 되고 쾌감을 줍니다. 더군다나 이번 펜바탕은 콘셉트가 너무 명확한 작업이라 ‘이유’에 대해서는 가로쓰기 본문 조판에 맞춰서 제작되었다는 것 말고는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편하게 사용해 주세요.



[디자이너를 만나다]서체 디자인 스튜디오, 양장점 2부가 계속됩니다.



기획 직지소프트 기획팀
글/편집 정한얼 매니저
자료 제공 양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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