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포일 2021.01.21
2021.1.22.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김수영의 시 ‘헬리콥터’의 한 구절을 가져왔다.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는 민음사에서 1974년에 발행한 ‘오늘의 시인총서’ 중 첫번째이다.
색이 바래고 푸석해진 종이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루는 책이다.
시 또한 조심스럽게 읽게 된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자유’와 반드시 착륙할 수 밖에 없는
‘서러움’을 동시에 간직한 헬리콥터에 대해 쓴 평론가 김현의 해설이 와닿았다.
한자와 한글, 활자와 시인의 손글씨가 대비되며 조화를 이루는
표지디자인에도 눈이 갔다. 나는 이 책을 오마주하고 싶었다.

Q. SM폰트를 사용해 만든 작업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2016, 사월의눈) 사진가 홍진훤과 소설가 김연수가 함께 참여한 사진소설이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작품인만큼,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이 쉽게 읽히지 않기를 바랐다. 독자가 읽기 어려운 조판은 무엇일까. 내가 택한 방법은 세로짜기였다. SM신명조는 세로짜기 글줄 정렬이 가지런했다. 늘 사용하는 폰트로 온 정성을 다해 조판을 했지만, 독자는 매우 낯설어한다. 읽기 어렵다. 매우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지는 경험이었다.
Q. 후배 디자이너들 중 SM폰트를 잘 다루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디자이너 윤충근은 글자와 과감하게 마주한다. 글자 스스로가 자기표현을 하도록 조율한다. 현란한 한글 레터링이 여기저기에서 탄생하는 가운데 그는 SM 폰트만이 지닌 개성을 듬뿍 드러내는 기술을 가졌다. 거기에 위트를 담아내기까지 한다. 그런데 디자이너 윤충근은 레터링을 못하는걸까, 아니면 뛰어넘은걸까.
Q. 한글 타이포그래피에서 SM폰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생각은?
SM클래식 시리즈 폰트는 한국 출판디자인 역사의 증언이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폰트의 원형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디지털 폰트의 흐름 속에서도 나처럼 납활자와 사진식자 시기의 손맛을 품고 있는 글자 형태를 애타게 찾는 디자이너도 있다.
Q. 영감을 얻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걷기. 산책하면서 만나는 글자들, 풍경들이 작업의 실마리가 된다.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오로지 나 혼자에게 집중하게 된다. 걸으면서 속으로 되뇌이는 많은 생각과 말들이 있다. 그것이 귀하다. 가끔 아주 낯선 장소에 이르면 긴장과 호기심이 증폭한다. 문명화된 삶 속에서 야생의 면모를 느낀다. 걷기는 이렇게 구차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디자이너의 건강에 무조건 좋은 일이다.
Q. 오늘날의 시대적 영감, 키워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자기 갱신.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충고이다. 어느날 제법 사고치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만족한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이 퇴보의 시작이었다. 기술적인 숙련도는 높아졌지만, 감각이 무뎌지면 어떤 작업을 하게 될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자기 갱신을 통해 작업의 표현 방법이 끊임없이 서툴어진다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이다.
정재완 디자이너와 함께한 SM클래식

[SM3세명조, SM신명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책 ∙ 2016

[SM3세명조]
<그때는 개를 제대로 잘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시 포스터, 책 ∙ 2019~2020

[SM견출명조]
<쓸쓸한 길> 책 ∙ 2017
정재완은 북 디자이너이자 영남대학교 교수이다.
현재 사진책 출판사 사월의눈 아트디렉터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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