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이야기] SM서체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 김다희 북 디자이너 인터뷰 -2-

배포일 2019.02.15


민음사 출판그룹에서 나온 책 표지들을 보면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어떤 책은 오래된 책일지라도 간결하고 심플해서 세련돼 보이고, 또 최근 리커버를 통해 특별하게 제작된 책들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화려하고 매력적이다. 이런 아름다운 북 디자인 작업 속에 단순 틀에 갇혀 제작된 지루한 북 디자인이 아닌, 늘 책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다양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민음사 출판그룹 미술부 김다희 디자이너가 있다. 10년 이상의 시간을 북 디자이너로 일해 온 동시에 두 아이의 엄마, 워킹맘이기도 한 김다희 디자이너를 만나 북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와 예전부터 변함없이 쓰여오고 있는 SM서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민음사  출판그룹 미술부에서 황금가지, 판미동, 민음인 책을 디자인하고 있는 김다희 입니다. 이곳에서 일한지 벌써 13년 차가 되었네요. (웃음)


『지금 죽으러 갑니다』그림.최지욱_SM견출명조,『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SM신신명조 , 『그것』 SM견출고딕


요즘 근황은 어떠세요?

일터에서는 늘 그렇듯 책의 안과 밖을 디자인하고 책에서 파생되는 홍보 업무, 굿즈 등 여러 형태의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최근에 전자책과 온라인 소설 플랫폼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요. 보통의 삶 속에서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아내로 무척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사와 아이들 전학을 시키느라 더욱 정신없었네요.


북 디자이너로 오랜 시간 일해 오셨는데, 10년 이상 경력의 북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이 궁금해요. 오랜 시간 한길을 걸어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많은 분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는 데 도움을 드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보다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도록 더 나은 책을 만드는 게 저의 역할인 것 같아요.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을을 좋아하기 때문에 오래 일할 수 있었고 매번 새 책을 할 때마다 다른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소설, 실용서 등의 작업을 할 때 얻게 되는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만난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디자인을 위해 자료를 찾고, 사진 촬영을 하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그림 작가와 협업하고, 책에 맞는 서체를 고민하는 모든 과정이 재밌고요. 일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 또한 중요한 것 같아요. 디자인 회사에서는 기업물을 디자인할 때는 디자인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을 얻기가 어려웠어요.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도한 바가 잘 전달이 됐는지 등의 물음들이 있었고요. 북 디자인은 서점에서 내가 디자인한 책을 바로 만날 수 있고, sns를 통한 독자들의 피드백, 온라인 서점에서 서평 같은 것을 통해 독자들의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요. 책에 대한 호응을 볼 때 성취감을 느껴요. 디자인 이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는 독자들도 있고요.


두 아이의 엄마인 워킹맘으로 일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다행히 체력이 좋은 편이에요. 제가 결혼을 일찍해서인지 어려서 힘든 걸 잘 몰랐고... (웃음) 큰 아이가 엄마가 일할 수 있게 잘 따라온 것 같아요. 밤에 길게 잘 자고 엄마만 찾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회사 잘 다녀오라며 늘 기분 좋게 인사해 주었지요. 그래서 심적인 고민이 적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 육아와 일의 균형을 찾긴 했는데, 둘째에 대한 미련이 떠나질 않아 고민을 많이 했어요.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결심을 하고 둘째를 낳았는데 이모저모로 방법을 찾아서 육아 휴직과 육아기 단축 근무를 사용하면서 어느 정도 다시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게 된 환경이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온 것 같아요. 훨씬 더 많은 여성 디자이너들이 슈퍼맘이 되지 않아도 일과 육아를 더불어 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학창시절 편집디자인을 배우면서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하여 작업하는 게 재미있어 북디자이너가 되셨다고 하셨는데, 타이포그래피를 관심 갖게 된 배경이 있나요?

출판사에 입사하기 전 글자 만드는 작업을 잠깐 해본 적 있어요. 그냥 글자를 가지고 뭔가를 디자인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모든 디자인에 글꼴을 쓰기 때문에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는 분리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들에게 글꼴이란 당연한 재료이고, 편집 디자인을 즐겨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이포그래피까지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글자를 만들어 보았기 때문인지 북 디자인을 할 때도 표지 제목/글자부터 디자인을 시작해요. 그래서 저는 제목이 확실하게 정해져야 표지 디자인을 들어간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글자 수와 크기 따라 어떤 서체를 선택할지가 결정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표지 서체를 정하고 그다음에 전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요. 마찬가지로 본문 디자인도 초반에 잡아놓고 나서 마지막 표지 디자인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본문 제목, 목차 디자인 등 전반적인 서체와 스타일을 표지에 어울리게 다듬는 작업을 합니다. 그만큼 저에겐 표지 타이틀 서체를 선택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해요.


수많은 책을 디자인 하셨는데, 최근에 디자인하신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서체 디자이너인 친구 노은유와 함께한 작업이 기억에 남아요. 은유가 현재 제작하고 있는 옵티크 서체를 써서 만든 방대한 양의 주역 책이에요. 옵티크 서체는 아직 완전히 출시된 건 아니고, 원래 라틴체로 개발된 서체이지만 두꺼우면서도 힘 있는 부리가 주역 책 디자인에 어울릴 듯 하여 필요한 한자 몇 자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필요한 글자들을 만들었고 색다른 서체로 책을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옵티크 서체를 본문에 많이 못 쓴 게 아쉽긴 했지만요. 사실 주역 책 시장에는 디자인이라는 게 딱히 없어요. 그래서 제대로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본문을 보기 좋게 구성해서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좀 더 정리된,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지요. 최근에 독자 분이 남긴 후기에서 보통 주역 책은 본문이 복잡하고 보기 싫어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잘 정리되어 보기가 좋았다는 서평을 남겨주신걸 보고 참 좋아서 담당 편집자 분과 공유했네요.


주역 완전해석 표지


복잡한 내용을 보기 좋게 구성한 본문 


주역 목차 페이지



SM서체 중 가장 좋아하는, 혹은 즐겨쓰는 서체가 있으신가요?

신신명조를 가장 좋아하고, 견출명조도 자주 사용합니다. 그리고 세명조 같은 경우에도 세필로 쓴 여리여리한 느낌이 좋아서 서정적인 느낌을 줄 때 많이 씁니다. 제가 고딕 계열 폰트를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딱딱해 보이는 것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의 명조체를 좋아합니다. 시안 만들 때 고딕 사용한 시안도 만들긴 하는데, 그럴 땐 SM서체 중에서는 중고딕이나 견출고딕을 기본적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SM서체를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저와 비슷한 반응일 것 같아요. 딱 한 가지를 좋아한다기보다 이것도 많이 쓰고 저것도 많이 쓰고.. 그냥 밥 먹듯이 (웃음) 쌀밥처럼 없으면 안 되는 서체 아닐까요? SM서체는 오랜 시간 동안 본문용으로 사용되어서 매우 익숙합니다. 익숙하다는 점이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해요. 다른 서체를 본문에 사용하면 편집부와 독자분들 상당수가 어색해해요. 읽지 못하겠다는 독자들도 있고요. 특히 연세가 조금 있으신 분들이요. 책이라는 게 젊은 사람들만 읽는 건 아니니까 무언가를 바꿀 때는 전 연령대를 다 고려해야죠.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SM신신명조



민음사에서 출판하는 책, 잡지 등 여러 카테고리에서 SM서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북 디자이너가 보는 SM서체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SM서체가 눈에 익숙한 게 매력인 것 같고, 글줄이 춤추지 않고 안정적이에요. Garamond 와 섞어 쓰기도 좋고요. 크게 모나거나 두드러지지 않고, 보기가 편한 점이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본문에도 쓰기 좋고, 크게 키워 쓰기도 좋은 두루두루 사용가능한 서체 같아요.


빈티지한 일러스트레이션과 어울리는 SM견출명조가 사용된 표지


작년에 작업한 책 중 ‘지금 죽으러 갑니다’ 책에 SM견출명조를 쓴 이유는 최지욱 작가님 그림에는 빈티지한 매력이 있는데 견출명조가 그 이미지와 참 잘 어울려요. 다른 분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지 최지욱 작가님의 그림이 들어간 디자인 물에 SM견출명조나 바람체가 사용된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 죽으러 갑니다’ 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를 보자마자 이거 당연히 SM견출명조나 바람체 둘 중 하나를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이 묵직한 느낌이 있는데, 서체가 그림보다 죽으면 안되고 그림과 제목은 같은 비율로 보여야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가는 명조체를 쓰는건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하여 SM견출명조를 사용했습니다.


황금가지에서 출판한 '이갈리아의 딸들'과 ‘시녀이야기’ 책 표지가 강렬해요.

'이갈리아의 딸들' 이라는 책 같은 경우에는 한정판으로 제작된 책입니다. 황금가지의 첫번째 책이고, 기존 1996년에 출간된 오래된 책인데 최근 페미니즘 이슈로 책이 많이 팔리게 되었어요. 알라딘에서 진행하고 있는 born to read 라는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북디자인을 새롭게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기존 책을 열어보니 본문도 오래전 잡아둔 서체 값으로 자간 등 벙벙한 느낌이 좋지 않아, 조판도 다시 했어요. 표지 일러스트 같은 경우에도 책 내용처럼 현실세계에는 없는데 있는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서 이집트 벽화를 떠올습니다. 책 이야기에서 다루고 있는 농경사회, 임신한 여성 등을 직접적으로 그림에 나타냈고요. 개인적으로 표지 그림 같은 경우 선명하고 압도적인 디자인을 좋아해요. 박 쓰는 걸 즐겨하기도 하고요. ‘이갈리아 딸들’ 특별판 같은 경우에는 처음 발행한 3,000권이 순식간에 완판 될 정도로 디자인 자체의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갈리아의 딸들』2016년 특별판_ 그림. 김혜림 |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이야기』그림. 김혜림


'이갈리아의 딸들’ 리커버 프로젝트가 반응이 좋았던터라 페미니즘 소설의 연정선으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라는 책도 리커버 하게 되었어요. 박혜림 작가님과 다시 협업했습니다. '시녀 이야기'라는 책은 여자의 계급을 네개로 나누고 계급별로 의상을 구분해서 입힌다는 점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책 내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해서 의상 색상들을 표지 전반에 담았습니다. 이 두 책 모두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북디자인에도 서체 트렌드가 있나요?

빈티지하고 볼드 한 70-80년대 서체 스타일이 한동안 유행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 신서체가 많이 나오는데 두꺼운 서체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새로운 서체를 보면 다 써보고 싶어요. 요즘은 클라우드 서비스가 워낙 편리해서인지 여러 가지 서체를 써보는 것 자체가 트렌드가 된 것 같아요. 요즘엔 SNS를 통해 개인 서체 디자이너가 새로운 서체를 개발하고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존보다 더 다양한 스타일의 서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디자이너들이 늘 제목용 서체에 갈증이 있었는데, 최근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서체를 재료로 사용하는 한명의 디자이너로서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본문용 서체 같은 경우엔 익숙한 미감 때문에 바꾸기 쉽지 않아요. 기존에 나온 책의 본문용 서체를 다른 서체로 바꾼다는 것은 페이지가 엄청 흔들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새로운 책을 만든다고 보면 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본문용 서체는 기존에 사용하는 서체로 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책을 디자인하셔서 안 해본 디자인이 없을 것 같은데요, 혹시 앞으로 이런책 꼭 디자인해보고 싶다 하는게 있을까요?

딱히 그런 건 없고 모든 타이틀이 늘 새로워요. 책 내용에 맞는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어떤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건 없어요. 디자인이 잘 안 풀릴 때면 다시 원고를 들여다 보면 그 안에 답이 있어요. 누구나 회사 다니는 게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거나 답답할 때가 있는데 저 같은 경우엔 새로운 책을 만나고 그게 재미가 있으면 또 다시 열심히 디자인을 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해주세요.

현실적으로 일과 육아 사이에서 선택과 집중, 행복과 포기를 하는 일은 계속될 것 같아요. 아울러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늘 하고요. 독자 입장에서는 누가 디자인을 했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다 같이 어우러져야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알고 있는 것들- 많은 책들을 만들면서 체득한 작은 노하우, 예를 들면 판형과 제책에 따른 종이 그램 수, 별색 선택하는 방법, 적절한 후가공, 제작 비용을 줄이면서 효과적인 책을 만드는 방법과 더 나아가 책을 대하는 태도 혹은 즐겁게 일을 하는 방법 등등... 많이 나누고 싶어요. 결론적으로 책을 만드는 한 팀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작업도 보면서 자극도 받고 하는 과정이 있어야 제작 사고 없이 단단한 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직지폰트] SM서체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 3부가 계속됩니다.




기획 직지소프트 기획팀
글/편집 김경원
자료 제공 민음사 미술부 김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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